"[함께하는 교육] 집안일 가사노동 아닌 '배움의 기회'    중학교 3학년 정아(가명)는 집에서 꼼짝도 안한다. 제 방 정리와 청소는 물론 하지 않고 밥도 초등학교 4학년 동생이 차려줘야 먹는다. 정아가 어릴 적 엄마 아빠가 맞벌이 하느라 바빠 제대로 잡아주지 못한 게 이렇게 굳어진 것이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가방을 어머니가 싸 줘야 한다. 정아의 어머니(42)는 “일일이 챙겨줘야 한다는 게 귀찮은 것도 문제지만 너무 의존적이라 앞으로 인생을 제 힘으로 살아갈 수 있을 지가 더 큰 걱정”이라고 말했다.    방학이 시작돼 아이들의 집에 있는 시간이 늘었다. 하루 밥 세끼 꼬박꼬박 차려주고 방학 계획 실천을 감독해야 하니 부모로서는 갑갑할 노릇이다. 혼자 제 일을 찾아 하는 아이라면 시름을 크게 덜 텐데….    제 할일을 해내는 의젓한 아이로 키우는 법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 가사일이 그것이다.    어른스럽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이의 자율성과 책임감이 길러졌다는 뜻이다. 이는 학교 공부만으로 안된다. 아이는 다른 사람한테 도움을 줄 때 더 효과적으로 길러진다. 다른 사람을 위한 일 가운데 가장 가까운 것이 집안일이다.    엄마와 아빠를 위해 식구 모두를 위해 집안일을 거들 때 아이는 ‘남에게 주는 법’과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운다. 집안일이 힘겨운 가사노동이 아닌 배움의 기회가 되는 것이다. 이른바 대안교육의 한 전형처럼 여겨지는 노작교육도 일상의 일을 배움의 기회로 삼는다.    집안일을 계속하다 보면 정서적 안정감도 생긴다. 지적 활동 즉 공부에만 치중된 생활에서는 노력한 결과를 확인할 기회가 적다. 그런데 집안일은 깨끗해진 방을 금방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등 뿌듯한 성취감을 얻을 기회가 많다. 연우심리연구소 김만권 소장은 “성취감을 느끼다 보면 자신감이 생겨 정서적으로 안정된 아이로 자라나고 덤으로 가족 사이의 유대감도 깊어진다”고 말했다.    집안일은 엇뜻 상관없어 보이는 인지발달에도 도움이 된다. 잘 들여다 보면 집안일에는 수많은 난관이 숨어 있다. 손이 닿지 않는 가구 위 먼지를 닦아낼 때는 의자에 올라서야 한다는 식으로 난관을 돌파하는 ‘문제해결 능력’이 필요하다. 더 깔끔하고 더 효율적으로 끝내려면 관찰을 바탕으로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이 과정 자체가 문제해결 능력을 높이는 훈련이 된다.    미국 미시건대학 사회조사기구가 13살 미만의 3600명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연구해 2000년 8월 발표한 연구결과를 보면 부모와 함께 집안일을 하거나 놀이를 하는 경우 아이들의 응용수학 점수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에서 부모와 함께 하는 활동으로 13가지를 꼽았는데 그 가운데 빨래 음식준비 설겆이 청소 등 집안일이 반 가까이 됐다. 또 미국 어린이들은 1주일에 평균 5시간39분 동안 집안일을 거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집안일은 행동발달에도 바로 연결된다. 손을 쓰기 때문이다. 본래 눈으로 보는 것과 실제 손으로 해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바느질을 보는 것과 하는 것이 전혀 다른 것처럼. 집안일은 ‘제2의 두뇌’라고 불리는 손을 많이 놀려 두뇌발달을 자극할 뿐 아니라 눈으로 본 대로 손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인 ‘협응능력’을 키울 기회다.    손재주가 좋아 한번만 보고도 따라 할 수 있다는 사람은 협응능력이 뛰어난 것이다. 한국청소년상담원 유정이 상담교수는 “많은 학부모들이 돈을 들여 블럭 장난감을 사주는데 두뇌발달과 행동발달 측면에서 가사일은 똑같은 교육효과를 가져다 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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