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선생님!”    8살 혜주는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복지회관’으로 달려갑니다. 그곳에 가면 ‘아줌마 선생님’으로 부르는 자신의 ‘멘토(mentor·스승)’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가수 효리언니처럼 날씬해지고 싶은 혜주는 요즘 그렇게 좋아하던 ‘달고나(뽑기)’도 며칠째 건너 뛰었습니다. ‘아줌마 선생님’이 효리언니처럼 되려면 ‘달고나’ 같은 것은 먹지 않는 게 좋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9살 예진이는 의기양양하게 알림장을 펼칩니다. 각종 곡식에 대해 알아오기가 숙제입니다. 이번에는 자신 있습니다. 지난번 과일 씨앗 모으기 숙제 때는 온 동네 쓰레기통을 다 뒤졌지만 그날따라 여름내 파리를 꼬이게 했던 수박씨 포도씨 사과씨가 다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눈물을 글썽이며 숙제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곡식 숙제’는 ‘아줌마 선생님’에게 부탁하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니 애나 잘 키우지? 이런 말을 들을까봐 염려도 되고 또 집에서 애 키우고 밥 짓고 살림한 경험밖에 없는데 내가 누구의 ‘스승’이 된다는 것도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도와달라’는 복지사 선생님의 간청을 뿌리치기가 어렵더군요.”      멘토링은 한 사람의 스승이 되어 지혜를 전수하는 제도. 단순히 한 분야의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삶의 노하우’를 전하는 것이다. 결손가정 아이들에게 삶의 스승이 되어주는 아줌마 멘토링은 지난 4월 경기 부천시 고강동의 ‘고강복지회관’(www.gogang.or.kr·관장 손현미)에서 시작됐다. 지역 내 결손가정 아이들 10명과 아줌마 10명이 1 대 1 ‘멘티－멘토’의 관계를 맺었다.      “결손가정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하고 시급한 것은 정서적 지원입니다.” ‘고강복지회관’ 가족복지팀의 김년경 사회복지사는 자녀를 길러 본 아줌마들의 노하우와 경험은 결손가정 아이들에게 따뜻한 가슴과 관심을 줄 수 있는 자원이라고 판단했다. 부드러운 아줌마들의 힘과 포용력이 멘토의 자질로 충분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멘토라면 아무래도 지식이 높거나 사회적 성공자여야 할 텐데….” 혜주의 멘토로 활동하고 있는 장용숙씨는 처음에는 ‘멘토’라는 말이 낯설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3주 과정의 멘토 교육을 받으면서 결손가정 아이들의 힘겨운 삶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 부담을 내려 놓았다.      10살 시라의 멘토로 나선 안용민씨는 “누가 ‘멘토(선생님)’고 ‘멘티(제자)’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별 생각 없이 알고 지내던 동네 아줌마들과 함께 멘토링에 참여했는데 시라를 통해 깨달은 것이 너무나 많다고 말했다.      “시라를 처음 봤을 때 얌전하고 참해서 문제가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피지 출신의 엄마와 한국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시라는 까만 피부색 때문에 문 밖에 나가길 꺼린다. 더군다나 우리 말과 글을 모르는 엄마 손에서 자라다 보니 시라는 10살이 되었지만 학습면에서는 ‘백지’에 가깝다. 그나마 엄마는 피지로 떠나버리고 아버지는 비오는 날에나 가끔씩 집에 들른다. 고아 아닌 고아가 되어버린 시라. 한창 예쁘고 밝게 자라야 할 나이에 자신에게 지워진 고통이 너무 많아 피기도 전에 시든 것처럼 보이는 시라를 보면서 안용민씨는 “어른들의 잘못으로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너무 가슴 아프다”며 “비록 내 아이가 아니지만 이 아이들의 고통을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9살 예진이 10살 준혁이 그리고 형주 등 엄마·아빠가 계시지만 부모로부터 양육과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 아이들 대부분은 할머니·할아버지 손에서 양육된다. 이들 ‘노손(老孫) 가정’ 아이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학력저하.              “애들을 초등학교에 보내놓고 보니 엄마 없는 아이들이 제일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10살 준혁이의 멘토인 정경숙씨는 요즘 초등학교 아이들의 숙제가 엄마 숙제인지 아이 숙제인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갈수록 가족해체가 가속화되고 있고 부모가 있다하더라도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부천시 ‘고강복지회관’의 ‘아줌마 멘토링’은 가족해체 시대에 가족기능을 보완해 주는 시험대가 될 수 있을 듯하다.      ▶멘토링의 유래      기원전 1250년 트로이 전쟁에 출정하게 된 율리시즈는 한가지 걱정이 있었다. 외아들인 텔레마쿠스가 몸도 마음도 허약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전쟁터로 나가기 전 친구인 멘토(Mentor)에게 아들의 양육을 부탁했다. 전쟁이 20년 넘게 이어지는 가운데 멘토는 부모처럼 스승처럼 텔레마쿠스를 가르치고 이끌었다. 그동안 텔레마쿠스는 강건한 용사로 변모했다. 이처럼 단순한 지식뿐 아니라      풍부한 삶의 지혜와 경험을 전하는 교육방식을 두고 훗날 교육전문가들은 멘토의 이름을 따 멘토링 교육법이라고 불렀다.      〈글 김후남기자 k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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