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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신 초기엔 곰처럼… 배불러오면 여우처럼


정부에선 각종 출산 장려 정책을 내놓으며 아이를 낳으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제도의 혜택을 받으려 출산을 결심했다는 이들은 아직 드물다. 임신에서 출산 그리고 육아로 이어지는 대장정에서 맞닥뜨리는 난관이 아직은 너무 많아서다. 특히 만 아홉 달 아이를 품은 채 일해야 하는 임신한 직장 여성은 아이도 낳기 전에 현실의 벽을 절감한다. 임신부 직장인과 임신부와 함께 일하는 직장 동료 각각 10여명으로부터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보며 서로 상생할 수 있는 지혜를 그러모아 봤다.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위해 익명 처리를 했다.

◆""난 안 그랬거든…"" vs ""엄살이 아닌데…""

임신 8개월인 직장인 김모(30)씨는 몇 달 전 아랫배가 땅겨 ""야근을 못할 것 같다""며 함께 일하는 여자 팀장에게 사정을 얘기했다. 몇 분 뒤 면전에선 아무 말 없던 팀장이 보낸 문자 메시지. '난 임신했을 때도 야근 다 했는데 ○○씨는 왜 특별 대우를 원하지?' 김씨가 털어놨다. ""솔직히 섭섭했어요. 팀장은 그래도 예의 차린다고 바로 얘기하지 않고 메시지를 보낸 것 같은데 같은 여자끼리….""

취재에 응한 임신부 중 상당수가 먼저 출산을 경험한 여자 상사와의 관계가 가장 어렵다고 얘기했다.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정모(33)씨는 ""출산 경험이 있는 여자 상사들이 더 이해해줄 것 같았는데 오히려 더 엄했다""며 ""나는 참았는데 너는 왜 그렇게 참을성이 없느냐는 투로 시어머니처럼 굴어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했다.

아이 하나가 있는 워킹맘 김모(36) 화장품 업체 팀장은 ""임신한 동료를 더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만 동시에 조직에서는 임신부이기 전에 프로여야 한다는 사실을 인생 선배로서 강조하다 보니 서운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고 했다. 그는 ""농담 삼아 '군대 3년도 기다리는데 '10+3개월'(임신 10개월과 출산휴가 3개월)은 기다려 줘야 하는 것 아닌가'하며 참는 동료가 많다는 걸 알아달라""라며 웃었다.

◆어쩔 줄 모르거나 혹은 예의 없거나

최근 임신 6주 만에 유산을 경험한 직장인 이모(32)씨는 유산 직후 남자 상사의 반응에 당황스러웠다. 이씨의 상사는 ""에휴 어떻게 하니""하며 따뜻하게 어깨를 감쌌다. 하지만 이씨가 정작 기다렸던 ""며칠간 푹 쉬어""라는 지시는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유산한 다음 날 하루만 쉬고 바로 일을 해야 했다. 패션회사에 근무하는 박모(남·45) 팀장은 ""가끔은 진짜 아픈가 의심이 들기도 한다""며 ""증상을 꼬치꼬치 따져 묻는 게 민망해서 아프다고 하면 웬만하면 그냥 보낸다""고 말했다.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 임신부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남자 상사도 있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임신 8개월의 박모(27)씨는 ""회식 자리에서 아직도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피우는 남자 동료들이 있다""며 ""그럴 때면 내가 이 자리에서 없어져야 할 짐짝처럼 느껴진다""고 토로했다. 임신 6개월인 고모(28·대기업 근무)씨도 ""담배를 피우는 임원들에겐 말도 못하고 정말 괴롭다""고 했다.

◆곰으로 시작해 여우로 변신하라!

임신부를 배려하는 직장 분위기가 우선돼야 하지만 배려를 이끌어내는 임신부의 처신도 중요하다. '당연히 배려를 받아야 하는 사람'처럼 행동하면 돕고 싶은 마음도 없어진다. 지난해 출산한 직장인 양모(38)씨는 ""경험에 비춰봤을 때 출산 초기에는 곰처럼 행동하다가 몸이 무거워질수록 차츰 여우로 변하는 게 현명한 처신법""이라고 했다. ""상대적으로 몸이 가벼운 임신 초기에 되도록 곰처럼 묵묵히 하는 모습을 보여 동료들이 자발적으로 배려하도록 만든 뒤에 후기로 갈수록 요령껏 쉬면 동료의 반감을 상대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만큼 몸이 불편할 때 미련한 곰처럼 가만 있어서는 안 된다. 홍보대행사에 근무하는 신모(43) 부장은 ""말을 너무 안 해서 아픈 줄 몰랐는데 어느 날 무단결근을 했더라""며 ""계속 앓는 소리를 해도 안 되겠지만 정말 불편할 때는 말을 해야 알아준다""고 조언했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티 내면 꼴불견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IT업체에 다니는 조모(29·미혼)씨는 ""임신한 동료가 초음파 사진을 보여주며 '우리 아기 너무 예쁘지 않니'라고 감동을 강요할 때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전 당신 남편이 아니거든요'라고 외친다""고 말했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이모(35) 과장은 ""업종상 단정한 태도가 중요한 직업인데 임신해서 지나치게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면 프로 정신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며 임신부의 자기 관리를 강조했다. 이 밖에 임신 초기부터 임부복을 입고 티 낸다거나 출장·회식 등에서 무조건 빠지려는 태도도 삼가야 할 행동으로 지적됐다.

임신부들이 말하는 ""이런 동료 너무 힘들어요""

― “나는 잘 참았는데…” 은근히 눈치 주는 여 상사.

― 말로만 배려하고 휴가는 안 주는 상사.

―회식 자리에서 뻑뻑 담배 피우는 사람.

―애 낳고 계속 다닐 건지 틈만 나면 묻는 동료.

동료들이 말하는 ""임신부 이런 모습은 제발…""

―임신 초기부터 임신복 입으면서 티 내는 ‘오버’는 그만.

―‘우리 아기~’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 입에 달고 살지 말았으면.

―회식·출장 무조건 열외는 곤란.

―태아 사진 보여주며 감동 강요하지는 말길.





조선일보 원문 기사전송 2010-11-10 03:26 최종수정 2010-11-10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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