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중앙불패’신화 >    김병일 서울시 대변인  지방에서 서울 갈 때 우리는 습관적으로 출발지의 위치나 고도에 관계없이 “서울에 올라간다”고 말한다. 서울보다 위도가 높은 파주에서 출발하든 해발고도가 높은 설악산 비로봉에서 출발하든 “올라간다”라고 한다.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프랑스 사람들도 파리보다 위도가 높은 북부 도시든 고도가 높은 알프스 정상이든 “파리에 올라간다(Je monte a paris)”고 말한다. 거꾸로 지방에 갈 때는 말할 필요도 없이 모두 “내려간다”고 말한다. 어디 이것뿐인가. 우리 속담에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한양에 보내야 한다”고 하고 “서울은 한국의 심장이다”라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파리가 프랑스다”는 말을 당연시 받아들인다.    물론 이러한 말들은 양국 모두 역사적으로 고도의 중앙집권적 형태를 유지해온 결과의 산물이라 하겠다. 프랑스는 근대국가 확립 이후 ‘루이14세 절대왕정’이 대표하듯 중앙집권형 국가의 세계적 모델이 되어 왔다. 우리의 경우는 역사적으로 한 번도 지방분권의 경험이 없다. 이러한 점에서 서울이나 파리에 올라간다는 말은 권력적 또는 통치적 차원에서 우월한 권력의 힘을 가진 ‘중앙’으로 힘이 없는 지방에서 올라간다는 것으로 그만큼 중앙우월 중앙불패 신화가 국민의식 속에 뿌리 깊이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세계화ㆍ지방화라는 말이 대변하듯 국가간 장벽이 무너지고 새로운 지구촌 시대가 열리면서 ‘중앙불패 신화’도 그 명을 다해가고 있다. 프랑스는 1982년 지방분권법(미테랑 정부)이 발효되면서 레종 데파트망 코뮌으로 대표되는 지방정부 간 그리고 중앙정부와의 수직적 구조를 완벽하게 상호 대등한 법인격의 수평적 구조로 전환시켰으며 최근에는 헌법에 ‘지방분권조직에 기초한 프랑스 공화국’임을 명기하는 등 수도이전 또는 수도분할과 같은 무리수 없이도 이제는 파리에 올라가는 것만이 아닌 내려갈 수도 있는 분권시스템을 구축했다.    반면 민선자치 10년을 맞이한 현 시점에서 바라본 우리 현실은 참담하다. 중앙과 지방이 주종의 수직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은 물론 기능 면에서도 10년 전의 3할 자치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참여정부가 출범하면서 ‘분권과 혁신’을 외쳐왔으나 자치경찰제에서 보듯 분권은 요원하고 말의 잔치에 그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여러 가지 걸림돌 중 중앙정치인이나 관료들의 맹신적 ‘중앙우월의식 중앙불패의식’에서 나오는 분권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최대 장애물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한다. 본래 분권은 중앙과 지방이 동등한 위치에서 권력을 종으로 쪼개어 통째로 나누어 갖는 것이지 권력을 위아래 횡으로 잘라 밑의 부분을 지방에 양보하거나 위임하는 것이 아니다. 즉 지방은 중앙 산하의 자치단체가 아니라 동등한 법인격의 정부로서 하는 일만 서로 다른 것이다.    분권을 이렇게 볼 때 일부 권한을 위임하거나 빌려주기조차 거북스러워하는 우리는 분권의 씨앗조차 심지 못했다고 평하는 것이 잘못된 얘기가 아닐 성싶다. 따라서 분권이 올바르게 가기 위해선 정치인과 중앙공무원들의 잘못된 우월의식 개선이 급선무다. 이를 위해 간단한 것부터 고치자는 제안을 하고 싶다.    공무원 직급명칭을 보자. 지방의 경우 ‘서울시 지방사무관’ ‘제주도 지방서기관’ 중앙의 경우 ‘보훈처 국가사무관’ ‘행자부 국가서기관’으로 구분한다. 굳이 국가 지방을 직급 앞에 넣어서 우월의식을 나타내고 열등감을 갖게 할 이유가 없다. 국가나 지방 글자 하나 덜 쓰면 타이피스트 힘도 덜 들고 잉크도 절약될 텐데. ‘서울시 사무관’ ‘제주도 서기관’ 듣기에도 좋지 않은가.    굳이 구분하려면 자기들만 그토록 자랑하고 싶은 ‘중앙벼슬’이라고 쓰면 된다. 기관명칭도 난데없는 ‘서울지방경찰청’ ‘충북지방식약청’도 ‘서울경찰청’ ‘충북식약청’이라고 쓰자. 서울시민을 ‘내가 시골사람인가’ 어리둥절케 하고 충청도민을 지방이라고 굳이 기죽게 할 이유는 없다. 이러한 기초적인 것부터 분권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수준이 아닌가 생각한다.    필자약력  ▶연세대 정외과 졸업 ▶프랑스 파리 소르본대 박사과정 수료(도시지리)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실 부이사관 ▶지방자치단체 국제화재단 파리사무소장 ▶서울시 뉴타운사업본부장 역임    [출처] [헤럴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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