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대 생각 - 계급제와 직위분류제        우리 인사행정은 '직무'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이어야 한다 | 정성호 | shchung@kyonggi.ac.kr      인사행정에 관한 접근 자세를 보면 크게 둘로 구분된다.    하나는 ‘정치이론적 접근’으로서 인사행정제도에 관한 논의가 어느 한 사회의 정치경제적 조건 속에서 바라는 공무원의 모습과 역할을 전제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 경우 공무원제도에 대한 평가는 폭넓은 행정의 정치사회적 역할에 대한 논의 속에서 이루어지며 그 논의도 과연 그 제도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공무원상(公務員象)을 구현할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물론 하나의 체제 밑에 있는 여러 제도들은 다른 제도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작동된다는 것을 전제한다.    다른 하나는 ‘기술적 절충주의’이다. 이는 인사행정을 인사관리의 효율화를 위한 하나의 관리기술로 보는 시각이다. 우리 인사행정 교과서들에서 정의하듯이 인사행정을 인력자원을 ‘적재적소에 배치 및 활용’하는 작업으로 본다.  여기서는 인사제도에 관한 논의에 앞서서 바람직한 공무원상을 정립하기 위한 현 정치와 행정간의 관계 및 문제점과 같은 골치 아픈 사색을 하지 않는다. 단지 어떤 제도가 더 ‘체계적(과학적)’이고 ‘효율적(효과적)’인가가 논의의 초점이다. 모든 제도들은 장단점이 있고 각종 제도들의 장점들을 극대화하고 단점들을 극소화하는 절묘한 ‘절충’의 접점을 찾는 것을 최대의 목표로 삼는다. 이때 인사행정제도란 파편화된 기술들의 묶음에 불과한 것이다.  미국에서 발달한 직위분류제적 인사행정체제나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시행중인 계급제적 체제나 모두 근대사회 속에서 그 논의와 발달과정은 정치이론적이었다. 두 체제 모두가 근대 민주주의 국가 건설을 위해서는 정치적 외풍에 흔들리지 않으면서 공익정신에 입각해 근무할 직업으로서의 공무원들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  단지 바람직한 공무원의 구체적 모습으로  유럽의 계급제에서는 사회의 타 직업과 구분되는 공직으로서의 직업의식이 투철한 공무원상을  미국의 직위분류제에서는 맡을 바 업무의 최고 전문가를 상정하였을 뿐이다.  두 체제 모두가 채용에서 퇴직에 이르기까지 바로 이러한 목표로 인사행정의 구체적 제도를 설계 운영해 왔음을 볼 수 있다. 따라서 미국과 유럽 모두에서 행정은 근대역사를 통해 정치적 혼란과 부패 속에서도 민주주의를 확립하는데 중대한 공헌을 했다.  우리의 문제는 인사행정의 논의와 개혁이 이같이 정치이론적 입장에서 이루어지질 못하고 기술적 절충주의에 입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변을 둘러봐서 유행하거나 좋다고들 말되어지는 제도는 그것이 외국 것이든 자동차 판매원에게 적용하던 것이든 간에 정치이론적 시각에서 기존제도와 유기적 관계에 관한 면을 검토하질 않고 그 도입을 시도해 왔다는 점이다.  우리의 국가공무원법에는 계급제적 용어와 직위분류제적 용어가 혼재해 있고 9급 7급 5급 공무원을 뽑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개방형 임용제라 하여 직위에 따라 사람을 뽑고 있다.기술적 절충주의에 입각한 인사행정은 그 절충한 기술들이 서로 상충하여 기대했던 결과가 나오기는커녕 오히려 공무원들에게 혼란과 갈등 그리고 불안감을 조성한다. 공직사회의 불안감 조성은 공무원들로 하여금 인사권자에 대한 명령복종을 강요할 수는 있지만 우리 국가공무원법에 규정된 공무원의 역할인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역할수행은 어렵게 만든다. 왜냐하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알아주지 않는 일을 보람으로 삼는 공공봉사적 행동은 일종의 자기희생적 심리작용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기술적 절충주의로 군사정권시대 우리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보다는 정권에 더 충성하는 역할을 했고 현 정부에 들어와서도 ‘경쟁력’이라는 기업경영논리로 개방형 임용제 성과급 도입 등으로 공무원에게 국민에 대한 ‘공공봉사성’보다는 인사권자에 대한 ‘명령복종성’이 더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무원 자신들조차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노동조합결성의 움직임이 나온 것은 아마도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닌가 한다.  21세기의 초입에서 우리가 요구해야 할 행정의 정치사회적 역할은 무엇인가? 그것은 너나없이 경쟁이 판치는 사회에서 ‘경쟁’이 아닌 ‘협동’의 가치를 구현시키는 역할이다. 왜냐하면 대내적인 협동력 없이는 대외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없기 때문이다.  행정은 경쟁의 사회 속에서 낙오되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를 편들어 균형 잡히고 건강한 공동체 형성의 조력자 역할을 해야 한다. 19세기와 20세기 초반까지 미국과 유럽에서 직업공무원들이 정치적 부패의 견제자로서 사회적 변화의 적극적 참여자로서 민주주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점들을 상기해 볼 때 지금 우리에게도 행정의 이와 같은 정치적 역할이 절실히 요청된다.    그러나 21세기인 지금 분명히 달라야 할 점은 행정이 일반 시민의 위에서 지시하는 모습으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과 같은’ 모습으로 ‘시민과 함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공무원과 시민간에 ‘모습’의 차이가 없어야 한다.명령복종성이나 경쟁이 아닌 공공봉사성과 협동을 사회정치적 주요 가치로 일할 21세기의 공무원을 위한 인사행정체제는 어떠해야 하나? 우선은 미군정 때부터 지난 반세기동안 인사행정개혁 때마다 시도되었던 미국식 직위분류제로의 개혁은 적절한 답이 아니다. 왜냐하면 직위분류제적 체제는 각자의 구체적인 역할을 미리 규정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직위분류제는 17 18세기 서구의 기계론적 문명관을 아주 잘 반영하는 제도이지만 그 고정적인 역할 규정은 조직 내외적으로 각자에게 적극성과 자발성에 입각한 끝임 없는 변신을 요구하는 21세기 탈근대 시대에는 오히려 업무 방해적 요소로 작용된다. 뿐만 아니라 조직적으로도 직위분류제는 조직을 파편화된 개인들의 단순한 합으로 보고 있는 만큼 이 분(分)을 합(合)으로 이끌 지도자의 ‘통제적’ 지도력을 중요시한다. ‘관계’가 합(合)의 역할을 해야 할 미래의 비계층제적 조직에서는 통제적 지도력이 필요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공무원 한사람 한사람에게 정성을 들이는 ‘사람중심적’ 인사행정을 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한 사람이라도 행정의 정치사회적 역할수행에 적합한 사람을 채용하여 이들이 만족스러운 조직생활과 업무활동을 할 수 있도록 고충을 들어주고 개개인의 능력발전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채용한 사람을 퇴직 때까지 돌보는 사람중심적 인사행정을 펼쳐야 한다.  이를 위해서 바라건대 정부는 많은 비용과 혼란 그리고 조직내의 위화감과 갈등만을 야기하는 직위분류제의 도입과 성과급제도 등의 시행을 중단하고 우리 인사행정 안에서 통제위주의 기술적 절충주의의 관행을 폐지하는데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공무원들에게 ‘승진’에 목이 메이지 않게 해야 한다.  또한 현행 계급제적 인사행정이 갖고 있는 폐쇄적이고 전근대적인 상하계급적 요소들의 변화에 개혁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예컨대 현행 채용제도가 과연 공공봉사성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 사람을 채용하는가에 대한 신중한 연구가 있어야 하며 어떻게 다양한 사람이 들어와 다양하게 발전시킬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하며 과연 지금의 5급 고등고시가 7급 및 9급시험과 함께 별도로 존재할 필요한가 등도 근본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또 수없이 많은 공무원 훈련기관과 교육내용도 공무원 각자의 다양성과 발전에 과연 얼마나 효과적인가를 살펴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21세기 탈근대 사회를 위한 공무원 인사개혁의 방향은 공무원을 어떻게 말 잘 듣게 할 것인가 즉 국정운영의 효율적 수단으로 만드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공무원을 일반 시민과 시민이 선출한 정치인과 함께 국정운영에 참여하는 동반자가 되도록 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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