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공직진출 늘리자            우등생이었고 학생회 간부로 활동했던 대학친구가 있었다. 그는 대학 3학년 때 기술고시 임업직에 합격하여 교육부 발령으로 서울대학교에서 공직을 시작했다. 조교 신분이었던 나도 그와 통근버스를 함께 이용하며 의욕에 불타는 ‘참 공무원’의 모습을 접하게 되었다. 내가 전임강사에서 정교수까지 승진이라는 맛을 보는 동안 그의 직위는 임업사무관에 머물러 있었다. 안타까운 심정에서 총장께 그 친구의 선처를 부탁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교육부 안에는 사무관 이상의 임업 직위가 없어 승진은 불가능하고 타 부처로의 전직도 매우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는 만 26년의 사무관을 거처 작년에 임업서기관으로 승진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행정고시를 거친 다른 친구들은 국장 또는 차관보 등으로 근무중이다. 함께 근무했던 사람이 평하기를 기술고시를 하지 않고 행정 주사쯤으로 공직을 시작했더라면 지금쯤 부이사관 정도는 충분했을 거라고 한다.  현재의 체계에서 우수한 이공계 출신이 왜 공직 진출을 꺼리는지를 나타내는 대표적 사례이다.    정부는 ‘과학기술 중심사회 구축’을 국정의 주요 지표로 내세웠다. 글로벌 경쟁 시대에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는 새로운 미래 성장 동력을 창출하기 위함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과학기술에 기반을 둔 행정수요가 확대되고 정책 결정시에 과학 기술적 마인드를 지닌 기술직 공무원의 역할이 증대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공계 기피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으며 우수 기술 인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과학기술의 인적 기반까지 붕괴 위기에 봉착하고 있다.    상위직일수록 기술직 비율은 낮아지며 중요한 국가정책 결정과정의 참여에 한계가 있다. 실제 1~3급은 행정직이 78.4% 기술직은 21.6%이며 1급에는 기술직이 9.7%에 불과하다. 지난 3년간 연평균 기술고시 채용인원은 44명인 데 비해 행정고시는 175명으로 약 3 대 1의 비율이었다. 그나마 기술직은 임용부처가 편중되어 행정자치부 재정경제부 등 주요 정책결정부서에는 역할이 미미하다고 한다. 부처 내에서도 총무 예산기능 등에는 행정직의 전용 직위로 인식되고 있다.    최근 정부가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행정고시와 기술고시의 통합 등 몇가지 전향적 대책을 내놓은 것은 환영할 일이다.    흔히 중국의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9명 전원이 이공계 출신이라는 사례에 대해 중국이 우리의 발전 모델이 될 수 없다고 손사래를 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13억명의 인구를 조율하면서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중국 모델을 특수 예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이쯤에서 ‘행정직 강 직렬 기술직 약 직렬’의 행진은 멈춰야 한다.    그러나 급격한 시행은 공직 사회에 충격을 주며 저항을 유발할 수도 있다. 따라서 부처의 사정에 맞춰 점진적으로 시행하되 강제력의 뒷받침이 있어야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와 같은 제도 개혁이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국가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기술직 공무원에게 어려운 현안의 해결 방안을 검토해 보라고 하니 ‘이건 이렇고 저건 저래서 곤란하다’고 하는 데 비해 행정직은 ‘이런저런 사항을 동원하면 이렇게 해결할 수 있다’라는 해답을 가져오니 인사권자로서는 행정직 출신을 주요 보직에 앉힐 수밖에 없더라는 전직 장관의 말에도 일리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기술직에 대한 다양한 교육 기회를 부여하여 그들의 안목을 넓힐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들의 시야를 현미경에서 망원경으로 확대해야 한다.    우수한 젊은이들이 경제원론과 육법전서에 몰입하지 않고 차세대 반도체 바이오 장기 등과 같은 전문용어에 정통하기 위해 몰려드는 사회를 보고 싶다. 그들의 정확한 전문적 판단으로 다시 비약하는 대한민국에 살고 싶다.    황우석/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  출처: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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