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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과 끈기"김영윤 과장님
2013. 0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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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절과 끈기"" 김영윤 과장님

만날 때마다 친절하게 이름을 불러주면서 환대해 주는 분이 있다. 몸에 밴 친절은 누구에게나 베풀어진다. 그래서 호감이 가고 편하다.

조근조근 이야기하지만 강단 있는 분이다. 도청 양성평등과 책임지고 있는 김영윤 과장님이다.

 

 

Q) 언제 어떻게 공직에 들어오시게 되었습니까?

A) 1973년 2월 신성여고를 졸업하면서 그 해 바로 시험을 치러서 9월 오라동에서 첫 발령을 받았습니다. 이후 제주시내 8개 동과 제주시 여직원 최초 총무과(자치행정과) ‘시정계’ 근무와 화장장 담당 계장을 거쳐 벌써 36년 째 근무 중입니다.

 당시 신성여고에서는 우열반이 있었습니다. 우등반인 D반에서 졸업했으니 공부를 제법 한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친정이 4남 4녀의 대식구였고 당시 부모님들이 그랬듯이 대농을 했었던 부모님이셨지만 남동생 위주의 가정 분위기로 여형제들의 진학을 만류했습니다. 일본어를 조금 하는 척 했었고 일본에 이모가 계셔서 한 때는 일본을 가려고도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동생들 뒷바라지와 안정적인 직장을 위해 자연스레 공직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Q) 연로하고 병환 중에 있는 시아버지를 극진히 잘 모시는 효부라고 들었습니다. 왜 효부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습니까?

 A) 효부는 못 됩니다. 그리고 시어머님이 먼저 돌아가시고 나서 적적하신 시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것은 당연한 것이죠. 8년 가까이 모셨다가 지금은 치매 증세로 요양원에 계십니다. 생각만큼 찾아뵙지 못해서 늘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집도 친정처럼 8남 1녀의 대식구입니다. 제 남편이 셋째인데도 부모님께 참 잘 했습니다. 결혼 31년 째를 지내면서 느끼는 것인데 남편이 진짜 효자입니다. 저는 원님 덕에 나팔 부는 격입니다. 덩달아 하는 편이죠. 하지만 저도 어르신들과 잘 지내는 타입입니다. 친정 부모님께서 어른들을 잘 대하고 했었던 기억이 나는데 아마 나도 모르게 몸에 밴 것 같습니다.

 Q) 같이 일했던 동료들 전언으로는 담당 업무에 대한 집중도와 추진력이 매우 뛰어나다고 하던데 일하실 때 어떤 자세로 하시나요?

 A) 할수만 있다면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상대방 입장을 고려해서 추진하려고 합니다. 과정 속에서는 논란이 있어도 일단 결정되고 그것이 도민 이익이 된다면 비록 욕을 얻어 먹고 윗분에게 미움을 받더라도 강하게 몰아붙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조정력과 타협력이 좀 있다고 듣기도 합니다.
이는 27~8년을 일선기관에서 근무하면서 늘 민원과 맞닥뜨리는 현장근무를 많이 하다 보니 생긴 직업병인 것 같습니다. 특히 화장장 업무를 계장으로 맡아 있을 때와 도두동 매립 공사 때 사무장으로 있을 때에 직접 피부로 접촉하면서 몸에 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에서도 부족하고 잃어버리는 부분이 많다고 봅니다.

 Q) 직원들의 이야기로는 함께 일하고 싶은 상관 중 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웬만해서는 화를 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과연 그렇다고 생각하시나요?

 함께 일하고픈 상관이라는 말은 과찬 내지는 거짓말 같습니다. 직원들로부터 도움만 받으며 지내고 있습니다.저에게 화를 좀 참아내는 경향이 있다면 그것은 우선 부모님의 영향을 많이 받은 덕일 것입니다. 특히 친정 어머니는 인내심이 강하며 부지런하시고 남에 대한 배려가 남다른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사랑. 인내. 베품’ 과 같은 기독교의 믿음 생활을 바탕으로 삼아 부족한 점을 많이 고치려고 애쓰고 있어서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자상한 남편 조언도 많이 받고 있습니다.

 Q) 최근 대통령 표창을 수상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수상 소감을 말씀해 주세요.

 올해 7월 여성주간 기념에서 ‘여성 발전 유공’으로 큰 상을 수상하게 되었는데 직원과 계장님들을 잘 만난 덕입니다.

우리 과는 예민하고 갈등이 많은 부서입니다. 자질구레한 일들 같으면서도 꼭 필요하고 세심한 배려가 요구되는 일이어서 칭찬받기가 어려운 특성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상을 수상하게 된 것은 저 자신의 공적이 있어서는 아닙니다. 우리과 모두에게 돌아가는 상인 것입니다.

 

 Q) 지금까지의 공직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36년 공직 생활을 뒤돌아보면 엊그제 갔습니다. 그만큼 많은 일들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그 중에서 2가지 정도가 보람되고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먼저 기억나는 것은 화장장 업무를 담당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벌써 14년이 흘러간 일인데요 그 때 제주시청 사회복지과 의료보장(현 자활복지) 계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의료보장계에서는 시신 화장 관련한 문제로 하루가 멀다하게 민원이 발생했습니다. 특히 불의한 사고로 생명을 잃은 경우 등의 경우에는 모두 예민해져 있어서 일말의 흠이나 틈이 있으면 난리가 납니다.

 부끄러운 자화상이기도 합니다만 이러한 시급을 요하며 까다롭고 예민한 절차가 필요한 업무인데도 오히려 베테랑이란 이름으로 그리고 ‘다른 사람은 할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악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민원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뒷돈으로 해결하기도 하고 상관이 오히려 담당자에게 통사정을 하면서 일 처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담당자와 장의 관련 업체들끼리의 부조리도 큰 죄의식 없이 관성화가 된 것이죠. 문제를 알면서도 더 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도 문제 해결이라는 자기 기만이 있었고 속으로만 새기며 눈감아 버리곤 했던 것입니다.

 거기에 내가 옷 벗을 각오로 직원의 안일함과 부조리를 해결해 보려고 나섰던 것입니다. 주위에서는 걱정을 하면서 만류 했습니다. 결국 문제를 풀기 위해 내 손으로 시신을 불 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고 시신을 뒤집으며 화장하고 분쇄하여 유골함에 담아 넣는 일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도와달라고 기도하며 일을 처리했습니다. 담당자가 “자기 아니면 안 된다”며 뻐겨대는 안일한 관행을 과감히 청산한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의 유족들은 “재수 없이 어디 여자가 감히 시신을 처리하느냐?”하며 심지어는 침을 뱉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더 세심하고 조심스런 마음을 가지고 그 일을 내 손으로 5~6차례 처리했습니다. 지금도 “내가 어떻게 그런 것을 넘겼을까?” 생각해 봅니다. 한편 “반드시 사표를 받아서 그만두게 했어야 했나?”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당시 안일하고 제멋대로였던 담당자를 일벌백계했고 신기계를 도입하여 좀 더 빠르고 쉽게 화장이 되도록 업무 개선도 이루었습니다. 지금도 최선의 선택과 행동이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보람되고 잊을 수 없는 추억은 27억 원을 지키고 전국 최초로 부하 직원을 6급에서 5급 특별승진토록 하는 데에 세정과장으로서 일조를 한 일입니다. 이것은 저의 자랑이기보다는 당시 세정과의 모든 직원들의 공로입니다.

 2006년 서귀포시에 소재한 B회사가 27억 원 납세 금액을 환급해 달라고 도에 요청한 사건이었습니다. 이러한 요청에 심지어 행정안전부에서 조차 유권해석을 통해 환급을 하라고 했고 B회사의 진정서을 받은 고충처리위원회에서도 세금을 환부하라고 권고가 있었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B회사의 소송에 맞서 소송지원팀을 구성하여 법적 다툼을 벌인 것입니다. 당시에는 조마조마하고 괜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없지는 않았지만 대법원 판례 연구 과세논리 개발 등의 열정과 끈기로 결국 승소하여 27억 원의 자주재원을 지키게 된 일입니다. 세정과의 모든 직원들이 며칠 몇 날 밤을 지새며 헌신한 덕분이었습니다.

 

 Q) 현재 담당하고 있는 부서가 “양성평등과‘인데요 현 업무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어떤 입장에서 일하고 있는지를 말씀해 주세요.

 

 우리 과는 어린이집 운영 관리에서부터 방과후 지역아동 센터 운영 관리 보육원 여성 쉼터 등 70 여개의 시설과 단체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내년 1월 개관 예정인 ‘설문대 여성문화센타’ 개관도 준비 중에 있습니다.

한 쪽에서는 여성 상위 시대라면 여성의 지위가 조금 올라간 것을 냉소적으로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영역 전체적으로 보면 세계에서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 스위스 소재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한 '2009 글로벌 성(性)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성 평등 순위는 134개국 가운데 115위로 꼴찌권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성상위는 고사하고 성평등 지수가 꼴찌권이니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고 필요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봅니다.

 Q) 앞으로 공직 생활과 가정세서의 개인적인 목표나 바람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고 마저 다 하지 못해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큰아이 낳고 일주일 만에 출근하여 근무했던 30여 년 전과 비교해 보면 근무 여건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특히 당시의 남성위주의 근무 분위기와 환경과 비교해보면 지금은 오히려 남성 직원들이 불만이 있을 정도로 달라졌습니다. 물론 지금도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많이 있지만 성별에 관계없이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여성 후배 공무원들에게 같은 여성으로서 바람이 있다면 더 실력을 쌓아 갔으면 합니다. 그리고 사회ㆍ정치적으로는 지역구에 도의원이 배출되는 시기가 빨리 왔으면 합니다.

개인적인 바람은 퇴직 후 노인시설을 만들어서 운영하고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그런 여건이 안 되면 시설 자원봉사하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은 소박한 바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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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에 열정을 가지고 헌신적 공무를 담당하시는 과장님께서 국장으로 승진도 하시고 남편이 운영하는 용담동 해안도로변 '뉘메로' 레스토랑도 잘 운영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과장님의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시길 기원합니다.

 


인터뷰어 : 제주퍼블릭웰 대표이사 송창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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