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한 기초단체가 유연근무제를 신청한 공무원의 복무관리를 소홀히 해 부산시의 감사에 적발된 가운데(관련기사 CBS노컷뉴스 16. 7. 기장군 '유연근무제' 출퇴근 기록 안 남긴 직원 72명 적발) 이 같은 현상이 현실을 외면한 보여주기식 제도 도입에 따른 진통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부산 모 구청에서 근무하는 A씨.
A씨는 올해 여름 구청에서 출퇴근 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유연근무제 신청을 받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육아 문제 등으로 고민하던 A씨는 조금이라도 일찍 퇴근해 아이를 돌볼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해 출퇴근 시간을 1시간씩 앞당기겠다고 신청했다.
하지만 A씨의 기대는 현실과 달랐다.
일찍 근무를 시작한 만큼 일찍 퇴근하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상급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일이 많거나 구청 안팎의 행사가 있을 경우 이를 두고 직접적인 지적까지 받아야 했다.
또 다른 구청 직원 B씨는 남들보다 일찍 출근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유연근무제를 통해 충분히 개인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B씨는 아예 신청 자체를 포기했다.
유연근무제를 신청해도 바뀐 출퇴근 시각을 지킬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 데다, 혹시 모를 불이익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B씨는 이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신청자 명단에 이름만 올리거나, 출퇴근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 등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B씨는 "직원 대다수가 유연근무제를 신청해도 출퇴근 시각을 제대로 못 지킬 것이라는 상황을 알고 있다"라며 "단순히 숫자상 실적뿐만 아니라 유연근무제가 필요한 직원들이 실제로 근무시간을 보장받을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모습은 일부 구청뿐만 아니라 공무원 사회 전반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또 다른 공무원 C씨는 "상급자나 부서의 문화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유연근무제를 신청하고도 눈치를 보느라 출퇴근 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라며 "이 때문에 일부 지자체에서는 유연근무제 신청자 수를 부풀리거나 부서별로 강제 할당해 신청을 받기도 했다고 들었다"라고 말했다.
특히 최근 부산시 감사에 적발된 기장군의 사례도 이 같은 분위기의 결과라는 분석이다.
기장군에서는 올해에만 무려 72명의 직원이 1173 차례나 출퇴근 시각을 기록하지 않았다.
어차피 유연근무제를 신청해도 실제 출퇴근 시각은 평소와 다름없기 때문에 이를 실수로 기록하지 않았거나 기록할 필요가 없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시민단체는 유연근무제 등 직원 복지를 위한 제도가 정착할 수 있는 분위기와 제도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 양미숙 사무처장은 "유연근무제는 조직과 가정 등 사회적인 합의가 있을 때 제대로 운영되고 정착할 수 있는 제도"라며 "기장군 사태 등의 경우 상부에서 제도를 일방적으로 도입하고 하부조직은 이에 대한 실적의 부담을 가져야 하는 잘못된 방식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고 생각된다"고 지적했다.
결국, 실효성도 고려하지 않은 채 보여주기식으로 제도를 도입하면서 유연근무제 본연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부작용만 초래하고 있는 모습이다.
출처 : 노컷뉴스 / 송호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