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에서 통일부 6급 공무원에 임용돼 대통령 업무보고 연단에까지 섰던 북한이탈주민(탈북자)이 업무상 횡령 혐의로 사법처리될 위기에 처했다. 앞서 통일부는 하나원 1기 출신인 해당 공무원을 직위해제 후 대기발령 조치한 뒤 수사기관에 고발했다.
22일 더불어민주당 박병석 의원실에 따르면 통일부 감사관실은 탈북자 정착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자신이 담당하는 교육 프로그램 재료비 320만원을 빼돌린 혐의(업무상 횡령)로 김모 주무관(44)을 수사기관에 고발했다. 최근 서울 종로경찰서는 김씨 사건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탈북자들 사이에서 남한 정착 성공사례로 알려져 있다. 그는 2005년 행정안전부 산하 이북5도위원회 비서직을 거쳐 2009년 9월부터 경기도 제2청의 남북협력담당관실에서 9급 계약직 공무원으로 일했다. 이런 경험을 인정받아 2010년 3월 일반인들을 상대로 공모한 하나원 6급 일반계약직 공채에 합격하기에 이른 것이다. 틈틈이 학업도 게을리하지 않아 국내의 한 유명 사립대학에서 남북관계를 전공해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6년 전 통일부 입성은 김씨가 부처 산하 교육기관인 ‘하나원 1기생’이라는 점 때문에 더욱 빛났다. 1999년 남한으로 넘어온 이후 11년 만에 당당하게 ‘마음의 고향’으로 여겨온 하나원에서 탈북자들을 가르치게 됐다. 김씨는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탈북자들을 믿지 못해 일을 제대로 맡기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면서 “내가 공무원으로 자리 잡는 것이 탈북자들을 바라보는 분위기가 성숙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탄탄대로를 걷던 김씨에게 금세 더 큰 기회가 찾아왔다. 2012년 1월 서울 종로구 남북회담본부 회담장에서 열린 통일부 업무보고 때 당시 이명박 대통령, 김황식 총리, 류우익 통일부 장관과 나란히 연단에 서는 영예를 누린 것이다. 이후 김씨는 경기 안성시에 있는 하나원 본원에 근무하면서 탈북자들을 상대로 남북한 사회문화의 차이에 대해 교육하는 중책을 수행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김씨가 하나원 본원에서 분원으로 인사발령을 받아 나간 뒤 그의 업무를 다른 직원이 인수받으면서 불행이 찾아왔다. 이 직원은 김씨가 작성한 지출결의서를 살펴보다가 교육생 수를 기준으로 산정한 금액보다 실습 재료비가 더 많이 나간 점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숫자가 맞지 않아 재료업체에 장부 확인을 요구했더니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업체 대표는 “김씨가 실제 납품하지 않은 재료비를 정산하자고 해 사무실에 간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김씨는 지난해 3월부터 1년 가까이 ‘메이크업 과정’을 맡아 강의를 진행하면서 두 차례에 걸쳐 총 320만원을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통일부 감사관실은 이번 횡령 사건을 계기로 대대적인 자체 감사를 벌이고 있다. 통일부는 박병석 의원실에 남북회담본부·통일교육원·남북출입사무소·남북교류협력협의사무소·한반도통일미래센터 등을 상대로 유사사례가 없는지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탈북자 신화’로 소개된 김씨의 부정행위가 바깥으로 새나갈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출처 : 경향신문 / 구교형 기자 wassup01@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