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공로연수는 10여년 전부터 국회 국정감사 등을 통해 숱한 비판을 받았다. 명목은 연수지만 실제로는 월급받는 장기 휴가에 가깝게 운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할 부처인 행정안전부와 인사혁신처는 여러 문제 제기에도 제도 개선을 하지 않고 공로연수를 방만하게 운영해왔다. 더욱이 정부부처 산하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에서도 공로연수 혹은 공로연수와 유사한 형태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문제다.
■ 공직사회 내부도 “이럴 바엔 폐지하자”
13일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인사혁신처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공로연수 참가자는 본인 희망에 따라 공무원교육훈련기관, 공무원연금공단, 민간 연수기관, 대학교 평생교육원 등에서 연수과정 참여가 가능하다.
다만 연수과정은 필수 참여가 아닌 선택 사항이다. 2014년부터 교육(합동연수) 시간이 60시간 이상 되도록 공로연수 계획을 짜야 하지만 강제 조항이 아니다. 공로연수를 마친 뒤에도 따로 연수보고서를 쓰거나 제출할 의무도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공직사회에서도 공로연수제도를 두고 “불필요하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세종시에 거주하는 정부부처 소속 국가직 공무원은 “지금처럼 어영부영 운영하고 욕먹을 바엔 차라리 없애는 게 낫다”고 했다. 더 일하고 싶은데 후배들 자리 때문에 떠밀리듯 밀려나고 있다는 불만도 있다.
한 지자체 소속 지방직 공무원은 “후배들에게 길을 터준다는 취지에서 공로연수를 쓰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제 그런 관행은 없어져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방직 공무원을 관할하는 행정안전부는 국가직 공무원의 인사를 담당하는 인사혁신처가 움직여야 지자체 공무원 공로연수 제도가 개선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인사혁신처는 공로연수제가 다른 공무원 인사제도와 연관돼 있고, 고령화 사회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공무원 재교육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기대수명이 늘어나고 있어 공무원들이 퇴직 후에도 공직에서 배운 노하우를 민간에 활용할 기간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며 “향후 공로연수제를 내실화할 수 있는 여러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공공기관·공기업에도 있는 ‘공로연수’
국내 최대 공기업 중 한 곳인 한국전력은 공식적으로 공로연수를 폐지했지만. 퇴직지원 프로그램 ‘아웃플레이스먼트’로 변칙적인 공로연수를 운영한 사실이 드러났다.
13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박재호 민주당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한전은 올해 219명, 지난해 365명, 2015년 337명, 2014년 259명이 ‘정년퇴직지원 아웃플레이스먼트’ 교육에 참여했다.
투입된 예산은 올해 42억2600만원, 지난해 67억2200만원, 2015년 59억5500만원, 2014년 43억6400만원이었다. 한전이 박재호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한전은 2013년까지 공로연수(267명)를 실시한 뒤 2014년 이후 공공기관 정상화 개선으로 폐지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향신문 취재 결과 아웃플레이스먼트 교육으로 사실상 공로연수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아웃플레이스먼트 교육은 퇴직 전 24주 동안 진행되는데 집합교육 2주를 제외하면 나머지 시간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다. 월급은 받지만 일은 하지 않고 쉬는 공무원 공로연수와 유사한 형태였다. 한전 관계자는 “향후 교육 프로그램 내용을 퇴직 예정 직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한전 이외에 산업부 산하 한국광물자원공사와 한국광해관리공단은 아직도 공로연수 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다. 광해관리공단은 2년 연속 신청자가 없었지만 광물자원공사는 올해 3명, 지난해 3명, 2015년 9명이 공로연수를 이용했다. 박재호 의원은 “문재인 정부가 공공 일자리를 늘리려 하는데 정작 공기업이나 공공기관 직원들이 퇴직 프로그램 명목으로 월급만 받고 쉬는 관행은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출처 : 경향신문 /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