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한 주민센터에서 시간선택제 공무원으로 일하는 주부 A씨는 최근 병상에서 일어난 지 얼마 안된 친정어머니께 아이를 맡겨야 했다. A씨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위해 탄력적 근무시간이 보장되는 '시간선택제 공무원'으로 취업하려고 2년 전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뒀다. 그러나 매일 2~3시간 초과근무를 하는 통에 오후 2시에 퇴근해 세 살짜리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데려온다는 당초 계획은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여성 고용 활성화와 일·가정 양립을 통한 출산율 제고를 위해 박근혜정부 시절 도입한 시간선택제 공무원 제도가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했다.
명분에 휘둘려 정교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정책을 추진할 때 나타날 수 있는 폐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새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서도 유사한 정책 실패 사례가 양산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시간선택제 공무원'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달 초 정부가 발간한 행정자치통계연보에 따르면 박근혜정부 시절인 2014년 도입된 후 지난 3년간 시간선택제 공무원으로 총 3176명이 채용됐지만, 지난해 12월 말 현재 근무 중인 인원은 54%인 1715명에 불과하다.
채용 후 절반에 가까운 46%가 퇴직했거나 임용을 포기 또는 유예했기 때문이다. 임용 포기는 시험 합격 후 다른 곳에 중복 합격해 다른 곳에 취업하거나 마음이 변해 근무하지 않는 경우다. 임용 유예는 개인사정 등을 이유로 임용 일정을 미뤄달라고 요청한 경우다. 어쨌든 정부의 취지대로 일선에서 활용되고 있는 인력은 전체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셈이다.
시간선택제 공무원은 박근혜정부가 '고용률 70% 달성'을 목표로 도입한 제도 중 하나다. 종일 근무는 곤란한 여성 인재들에게 기회를 주고, 저출산 고질병을 타개하기 위해 유연성 있는 일자리를 제공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애초 목적과 달리 시간선택 자율성은 거의 없고, 공무원연금 등 기본적 권리에도 차별을 두는 등 미숙한 운영으로 저질 일자리만 양성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시간선택제 공무원들은 기본적으로 주 20시간 근무로 하루 중 4시간을 선택해 원하는 시간을 골라 일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타이핑·복사 등 단순 사무보조 업무만 맡으며 초과근무를 하기 일쑤다.
지난해 10월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전국의 시간선택제 공무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조사에 응답한 112명 중 61.8%는 "초과근무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특히 이 중 4시간 이상 초과근무를 한다는 비율도 14.5%에 달했다. '유연성을 높인다'는 본래 취지 자체가 온데간데없어진 것이다.
서울의 한 동사무소에서 근무 중인 B씨는 "출근 첫날 오후 2시에 정시 퇴근을 하려고 했더니 상사가 '무슨 이런 제도가 있나. 여기 가정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핀잔을 줬다"면서 "그 후로는 눈치가 보여 계속 매일 2~3시간씩 초과근무를 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어린이집에 돈을 더 주고 애를 맡겨야 했다"고 털어놨다.
초과근무도 문제지만 정식 공무원이면서도 전일제 공무원과 너무 격차가 큰 처우도 문제다. 실제 시간선택제 공무원의 공무원시험 필기 합격 커트라인은 전일제 공무원과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출장비나 성과상여금 등이 시간 비례로 적용돼 전일제 공무원과의 보수 격차는 상당하다.
같은 시간선택제 사이에서도 차별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시간선택제 공무원은 전환형·채용형 등으로 구분된다. 전환형 시간선택제 공무원은 과거 전일제로 근무하던 공무원들이 시간제로 전환한 경우다. '우리 식구'라는 인식하에 전환형은 공무원연금을 그대로 적용받지만 채용형은 공무원연금 대신 국민연금 가입자로 남는다. 정부는 제도 도입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채용형 시간선택제 공무원에게도 공무원연금을 적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시험에 합격하고도 임용을 포기·유예한 인원이 1213명에 달한다.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연구위원은 "시간선택제 공무원은 절대 양질의 일자리라 볼 수 없다"며 "전일제 혹은 전환용 공무원 간 차별 시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시간선택제 공무원' 정책이 실패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우선 '고용률 70% 달성' '저출산 타개' 등 거창한 명분과는 달리 제도 자체가 졸속으로 설계된 것이 문제점으로 꼽힌다. '보여주기식 행정'이 만든 처참한 정책 실패인 셈이다.
출처 : 매일경제 / 박재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