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에 셋째 출산을 앞두고 있는 한은정(가명 34세) 주부는 첫째 딸(5세) 때문에 걱정이 많다. 워낙 엄마에게 애착을 보이던 아이가 요즘은 더 심해져서 ‘세상 사람들이 나를 다 싫어한다’며 울음을 터뜨리는 횟수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둘째 아들은 건강하게 태어난 지 10일 만에 세균성 뇌수막염에 걸려 뇌병변 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현재 크게 아픈 곳이 있는 건 아니지만 발달이 더뎌 네 돌이 코앞인데 걷거나 말을 하지 못한다. 둘째에게 관심을 쏟으려고 하면 첫째 딸이 심하게 질투해 무척 난감한 상황에 빠진다. 곧 셋째가 태어나면 문제가 더 커질 것 같아 한은정 주부는 <우먼센스>와 신의진 교수에게 도움을 청했다.


신의진(이하 신) 첫째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고 들었는데요 가장 큰 걱정이 무엇인가요?

한은정(이하 한) 엄마 아빠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게 가장 큰 걱정이에요. 잘못을 해서 꾸짖으면 인정하지 않고 “엄마 아빠는 나를 미워해”라며 소리 내어 울어요. 얼마 전에는 멀리 사시는 할머니께도 자기를 싫어한다며 전화기를 붙잡고 펑펑 울더라고요.

신 그 증세만 들어도 아이에게 우울증이 있지 않은지 의심되는데요? 아이가 그렇게 반응하는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한 동생이 어릴 때 아파서 엄마하고 떨어져 지낸 시간이 있어요. 둘째가 생후 10일 만에 뇌수막염에 걸려서 세 번이나 입원해 수술을 받았거든요. 그때마다 딸아이가 저와 떨어져 있었어요. 저 대신 할머니가 올라와 계시고 아빠가 돌봐주었습니다. 그때 딸아이가 저하고 떨어져 지내면서 많이 외로웠나 봐요.

신 아이가 몇 살 때였죠? 그리고 엄마를 다시 만났을 때 아이 반응이 어땠는지 궁금하네요.

한 26개월 때였어요. 솔직히 그때 딸아이한테 신경 쓸 겨를이 없어서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아이가 저에게 매달리거나 그러진 않은 것 같습니다. 동생이 태어나면서 저에게 심하게 애착을 보이긴 했어요. 주변에서 둘째가 태어나기 전에 어린이집에 보내는 게 낫다고 해서 그렇게 했는데 별로 도움이 안 되었나 봐요. 아이 성격이 좀 예민한 편이기도 하고요.

신 원래 정상적인 아이들은 엄마를 오래간만에 만나면 달라붙고 그러는데 따님은 그렇지 않았군요. 예민한 성격이라고 하셨죠? 동생 때문에 집안에 문제가 생겨 관심을 받지 못하면 아이는 그 상황을 잘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세상에 혼자 남은 기분이 들죠. 물론 엄마 아빠는 아이에게 신경 썼다고 생각하겠지만 아이가 느끼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했을 거예요. 그 상처는 제대로 치료 받지 않으면 잘 아물지 않습니다. 소아정신과 치료를 꼭 받으시길 권합니다.

한 딸아이가 보채는 게 좀 심해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정신과 치료 기록이 남는다고 해서…. 좀 망설였어요. 대신 미술치료 같은 걸 받았는데 큰 효과가 없긴 했습니다.

신 지금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란 걸 직시하셔야 해요. 아이가 우울증을 앓고 있는데데 기록이 남는다는 이유로 치료를 안 받으시려고요? 그리고 병원 기록은 본인과 보호자밖에 열람할 수 없어요. 기록을 걱정할 때가 아닙니다. 따님이 ‘엄마 아빠가 나를 싫어한다’고 말하기 시작한 건 얼마 전이지만 그런 생각을 지닌 건 26개월 때부터일 거예요. 지금 현재 우울증 초기 증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빨리 치료받아서 상처를 아물게 하는 게 중요하죠.


치료가 우선 어머니의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해주세요

한 치료를 받으면 좀 괜찮아질까요? 그리고 제가 집에서 어떻게 해줘야 할는지요?

신 치료도 안 받아보고 걱정부터 하시네요. 어머니는 지금 마음을 단단히 먹고 현명하게 대처해야 할 때입니다. 세 아이의 어머니는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해야 해요. 게다가 둘째는 장애를 안고 있는데 주저하기만 하면 일이 더 커지게 될 것입니다. 부모님도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건 기본이고요.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죠. 이렇게 손 놓고 있으면 안 됩니다. 아이는 치료하면 괜찮아지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제가 보니까 어머니 성격이 좀 소심한 것 같네요. 원래부터 그러셨나요? 바뀌었다면 언제부터였죠?

한 원래 그런 성격은 아닌데 둘째가 태어나고부터 마음이 약해진 것 같아요. 아이가 아프니까 누구에게 말도 잘 못하고 속으로 삭이게 되더라고요.

신 아 그렇군요. 아픈 아이를 둔 엄마들의 경우 충분히 그럴 수 있죠. 죄책감도 들고 자신감이 떨어지거든요. 누구나 그렇게 될 거예요. 다만 그런 마음 상태가 지속되면 어머니에게도 우울증이 올 수 있으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어머니는 어떠셨어요?

한 처음에 멀쩡하던 아이가 병에 걸리니까 저도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아이 치료가 급하니까 저는 뒷전이었습니다. 그 상황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힘들어도 그러려니 하고 지나갔어요. 둘째 아이가 아프니까 자신감이 없어진 건 맞아요.

신 먼저 어머니가 당당해지세요. 아이의 장애는 어머니 잘못도 아니고 사고였으니 죄책감에서 벗어나세요. 원래 병은 광고를 해야 잘 낫는다고 했습니다. 우리 애가 장애가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세요. 그리고 지금은 어리니까 괜찮지만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면 다른 아이들과 차이 나는 걸 자기 눈으로 봐야 합니다. 그때도 어머니가 소심하게 굴면 아이에게 오히려 피해가 될 수 있어요. 아이가 아플수록 어머니가 당당해지세요. 그리고 큰아이에게는 엄마의 사랑을 되도록 많이 표현해주세요. 어린아이일수록 눈높이에 맞춰서 양육해야 하거든요. 아이마다 특징이 있으니까요. 형제가 아프면 상대적으로 정상인 아이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무척 큽니다. 대한민국에 이런 케이스는 참 많아요. 아토피로 고생하거나 사고가 나는 아이들도 많잖아요. 그럴 때 부모님들은 남겨진 아이가 받게 될 상처를 인지하고 이를 예방해야 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길 바랍니다.


8월호 상담 후기 - 김연희 주부가 전해온 상담 그 후…

“엄마가 변하니 아이의 소심함도 없어졌습니다”
여섯 살짜리 딸아이가 너무 의존적이어서 걱정이던 김연희 주부. 신의진 교수와 상담 결과 아이보다는 엄마의 문제를 먼저 해결하라는 조언을 받았습니다. 김연희 주부는 어릴 때 부모님의 불화를 목격했고 본인 역시 결혼 초기 부부 사이가 좋지 않아서 아이에게 크게 신경을 써주지 못했다고 합니다. 신 교수의 조언은 ‘엄마가 먼저 중심을 잡아라!’였습니다.
“아이가 소심하게 느껴지는 것은 제 시각 문제였더라고요. 제 마음에 여유가 없다 보니 아이가 조금만 징징거려도 속상한 거였죠. 그 사실을 깨닫고 마음을 다잡으니 더 이상 아이에게서 흠이 보이지 않더라고요. 물론 가끔씩 그런 모습이 보이긴 했지만 괜찮았어요. 스스로를 똑바로 바라보는 훈련을 하다 보니 마음이 참 편해졌습니다. 요즘은 남편과 대화를 통해서 마음의 안정도 찾는 중입니다. 제 자신은 물론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인생 공부를 한 기분이에요.”

* 신청 방법 담당기자 이메일(limetree@seoulmedia.co.kr) 혹은 편집부(서울시 용산구 한강로 2가 2-35 서울문화사 우먼센스 편집부)로 사연을 보내주세요. 선정 후 개별 통보합니다.




she is…
연세대 의대 소아정신과 교수. 조두순 사건 등 아동 성폭력 사건이 터질 때마다 헌신적으로 상담과 예방 활동을 벌여온 신 교수는 아동 정신건강 증진 아동 성폭력 예방과 보육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서울특별시 여성상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우먼센스 기사전송 2010-09-16 09:20
*기획 | 심효진 기자/ 자료제공_우먼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