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한마디
번호 | 글쓴이 | 제   목 | 등록일 |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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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영
5월 푸르고 푸른 생명의 계절에
2013. 0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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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 딸아이는 곧잘 엄마 아빠께 애정표현을 잘한다. 품에 안기기도 잘 하고 특히 서랍장 속이나 책상 위에 쪽지를 써서 놓아두기를 잘한다. 오늘 아침에도 식사를 차리느라 정신이 없는데 “엄마!” 라고 부르면서 식탁 위를 가리킨다.  식탁 위에는 예쁘게 접은 쪽지가 놓여 있었다.

“엄마! 아빠! 사랑해요. 저에게 모든 것을 ”유전자“로 물려주신 것 감사해요♡
하늘만큼 땅만큼 우주만큼 더 더 고맙구 사랑해요♡” 부담스러울 정도의 사랑 고백이 아닌가?

 아이는 쪽지를 읽는 내 얼굴을 살피면서 “ 엄마 어때? 나 잘 썼지!” 라고 묻는다. “그래 우리 딸처럼 사랑표현을 잘하는 아이는 없을 거야!” 라고 웃어 주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울면서 찡찡거리던 아기가 어느새 이렇게 컸는지?  이 아기가 언제면 말을 할 수 있을까?  언제면 자기 손으로 변을 닦을 수 있을까?  바라던 시절이 금세 지나가 버렸다.

  결혼을 하고 첫 아이를 임신했다. 임신 5개월이 되었을 때 의사선생님께서 보호자를 데리고 오라고 하였다. 내가 임신하고서 풍진에 노출되었기 때문에 뱃속의 아이가 기형아가 될 확률이 무척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 병원에서는 대부분 낙태를 권유한다는 것이다.
 
 “아이는 또 낳으면 되고 엄마가 아직 젊으니까 낙태수술을 하시는 게 좋을 것입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 순간적으로 귀가 멍하고 머릿속이 횅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병원을 나오면서 남편과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낙태를 시킬 수 없다고 의사선생님께 강력하게 말은 했지만 여러 가지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해졌다.

  결혼하기 전 연애시절에 남편은 “베토벤”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를 했었다. ꡒ한 부부가 있는데 남편은 매독에 걸려 있고 아내는 심한 폐결핵에 걸려있어. 이 가정에는 아이들이 넷이 있는데 하나는 며칠 전에 병으로 죽었고 남은 세 아이들도 결핵으로 누워 살아날 것 같지 않았어. 이 부인은 현재 임신 중인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ꡓ 그 당시는 그냥 피식 웃으면서“글쎄?” 라는 대답으로 넘어갔었다. 그 때 남편은 “아기는 낳아야 한다.”면서 만약 이런 경우에 낙태수술을 했다면  이 세상에 악성 베토벤은 태어 날 수가 없었을 거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 후로 5개월을 울면서 지냈다. 뱃속의 아이 걱정 우리 가정에 대한 걱정 자신에 대한 걱정 등으로 임신 후기의 시간을 도배하며 살았다. 아기를 낳게 될 즈음에 종합병원으로 옮겼다. 혹시나 뱃속의 아기에게 이상이 있을 경우를 대비해서 모든 진료 여건이 갖춰진 종합병원으로 옮긴 것이다.
 
 나의 진료기록을 보고 난 의사는 내 얼굴을 보기도 전에 “수술하러 오셨나요?” 라고 물었다. 물론 내 남편이 가만있지 않았다. 그 의사선생님은 남편과 나에게 정중히 사과를 했다.

 눈이 유난히 많이 내린 1월 중순에 우리 아들은 코가 오똑하게 잘 생긴 모습으로 너무나도 건강하게 태어났다. 이 애가 지난달에 열린 도민체전에서 수영자유형100m 종목에서 우승을 하였고  5월에 열리는 전국소년체전에 제주도 수영대표선수로 출전하려고 맹연습 중이다.
 
  며칠 전에 도서관에서 책을 정리하며 읽은 이야기 때문에 마음이 아파서 몇 시간 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었다. 최재천의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라는 책에서의 한 대목이다.

  ‘동료과학자가 독거미 암컷 한 마리를 채집했는데 등 가득히 새끼들을 오그랑오그랑 업고 있었다. 알코올 표본을 만들기로 작정해서 새끼들을 털어 내고 우선 어미부터 알코올에 떨궜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 어미가 죽었으리라 생각하고 이번에 새끼들을  알코올에 쏟아 부었다. 그런데 죽은 줄로만 알았던 어미가 홀연 다리를 벌려 새끼들을 차례로 끌어안더라는 것이다. 어미는 그렇게 새끼들을 품안에 꼭 안은 채 서서히 죽어갔다.’ ....

  실종된 지승이를 찾으러 나선 지 40여 일 만에 지승이는 시신이 되어 검정비닐봉지에 쌓여 부패된 채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불과 100M 거리 밖에 안 되는 곳에 살고 있던 이웃주민의 한순간 쾌락 때문에 지승이는 목이 졸려 괴롭게 아주 고통스럽게 죽었다.
  지승이에게 너무 미안하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얼굴 들기가 부끄럽다.
  딸아이와 동갑내기인 맑고 밝은 지승이를 처참하게 죽인 우리의 환경이 거미를 서서히 죽이는 알코올 병 속과 같아 보여 숨쉬기가 괴롭다.

  생명을 잉태하고 양육하여 번성시키는 일은 축복이자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사이버와 쾌락문화가 물질만능주의와 결합하여 생명을 마비시키고 죽여버리는 알코올환경을 초래하고 있다.

  5월 가정의 날을 맞이하며 마비되어 버린 우리의 생명력을 되살리고 푸르고 푸른 계절이 이 땅에 충만하기를 고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