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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감제도 구멍이 보인다
2013. 0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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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감제도 구멍이 보인다          "앞으로는 인감증명을 믿지 말고 거래 당사자를 확인하라."    서울고등법원 민사5부(재판장 양동관 부장판사)는 9월 16일 "동사무소 직원이 위조된 인감을 가지고 인감증명서를 발급해줘 손해를 입었다"며 남모씨가 문서를 위조한 김모씨와 강동구를 상대로 낸 대여금청구소송에서 "강동구는 다른 피고들과 함께 5억9천여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고 승소 판결 이유로 "인감 담당 직원이 돋보기와 같이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도구를 이용하거나 복사기에 의한 확대 복사 등을 이용해 면밀하게 비교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남씨는 김씨가 2001년 아버지의 인감을 위조 동사무소에서 받은 인감증명서 등으로 아버지의 토지를 허위로 소유권 이전등기한 사실을 모르고 이 토지를 담보로 7억원을 빌려줬다가 같은해 9월 김씨의 아버지가 근저당설정등기말소신청으로 토지를 되찾아가자 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판결에서 원고 남씨가 승소할 수 있었던 것은 동사무소 직원이 동사무소에 신고된 진짜 인감과 범인이 가져온 가짜 인감을 '돋보기 등을 이용해 제대로 대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가가 진본이라고 확인해준 인감증명서를 믿고 거래를 했는데 인감증명서가 잘못됐기 때문에 거래에 대한 책임을 국가가 져야 한다는 것이다.    남씨의 사건은 우리 사회에서 인감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잘 보여준다. 남씨는 7억원을 빌려주고도 불구하고 5억9천여만원밖에 돌려받지 못하게 됐다. 그동안 받은 정신적 피해까지 생각하면 손해는 막심하다.    인감 스캔하면 똑같은 도장 제조 가능    지방자치단체도 손해가 크다. 범죄를 저지른 사기꾼들은 이미 도주해 행방이 묘연한 상태라 지자체가 배상을 해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자 정부 차원에서 대책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동사무소 직원도 지자체가 구상권을 청구하면 돈을 물어내야 한다. 하지만 월급이 2백만원도 되지 않는 공무원으로서는 수억에 달하는 돈을 갚을 수 없다. 돈을 못갚는 경우 월급의 절반을 압류당한다고 하지만 이자도 제대로 갚지 못해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이를 막고자 대책으로 나온 것이 지난 3월 발효된 '인감증명법'이다. 새 인감증명법은 국가가 직접    개인의 인감이 진짜 인감이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게 아니라 보관하고 있는 인감을 출력해서 발급하도록 했다. 인감의 진위 여부를 거래 당사자가 직접 판단하도록 한 것이다. 등록된 인감을 데이터베이스화해 전국의 어느 동사무소에서나 신분증만 있으면 발급하도록 했고 제3자가 '심부름'오는 경우에는 신분증과 당사자의 위임장만 있으면 가능하도록 했다.    이런 변화에 대해 박지환 변호사(법무법인 다래)는 "국가가 직접 증명에 따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며 "새 제도로 인해 인감 위조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 가짜 대리인이 '가짜 위임장'을 작성해 인감증명서를 발급할 수 있는 '구멍'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발급된 인감증명서를 바탕으로 도장을 만들 수도 있다. 도장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이모씨는 "현재의 기술이라면 인감을 스캔해 원본과 똑같은 도장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위험성을 피하기 위해 정부는 7개월이 지난 뒤인 10월 1일부터 대리인이 인감증명서를 발급받으러 오는 경우 인감 소유자의 신분증까지 가져오도록 시행령을 개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구멍은 여전히 남아 있다. 위조된 신분증을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1999년부터 도입된 새 주민등록증의 위-변조 적발 건수는 2000년 36건에서 2001년 63건 지난해 177건으로 매년 2배 가량 증가했다. 위조 신분증을 주로 수사해온 한 경찰 관계자는 "인터넷을 통해 위조된 신분증을 2백만원대면 구할 수 있다"며 "일반인은 이렇게 위조된 신분증의 위조 여부를 잘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인터넷 사이트에서 찾아본 결과 어렵지 않게 '주민등록증 각종 면허증 만들어드립니다'는 글을 찾을 수 있었다. 글을 올린 이는 메일로 연락을 주면 자신이 수신자부담 전화로 단 한번만 연락을 하는 등 경찰을 따돌리기 위해 치밀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결국 인감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는 셈이다.    공증제도가 인감증명 대안될 수 있어    인감증명제도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하 전공노) 강북구지부 이달수 지부장은 "국가가 개인과 개인 사이의 사거래에 개입할 이유가 없다"며 "온 국민이 인감증명서를 믿고 거래하는데 위조    가능성이 있다면 국가가 굳이 발급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 지부장은 또한 동사무소에 근무하는 공무원의 처지를 강조했다. 만약 신분증을 제시하고 인감증명서를 발급받으려고 하는 한 시민의 실물이 사진과 다른 경우 주민등록증을 다시 만들어오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랬다가는 당장 "동장 나오라고 그래"라는 반응이 돌아온다고 한다.    보통 주민등록증상의 사진은 수년 전의 사진이다. 따라서 현재의 실물과 달라 보일 수 있다. 특히 여성의 경우 화장 여부에 따라 실물이 다르게 보이기 때문에 이런 어려움은 더욱 크다. 이런 까닭에 동사무소 직원은 운에 맡기고 인감증명을 발급한다고 한다.    실제로 서울 강북구 관내의 한 동사무소에서는 법령이 바뀐 이후 형제간 얼굴이 비슷한 것을 이용해 인감증명을 발급받아 사기를 저지른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형의 신분증을 동생이 훔쳐 형의 인감증명서를 발급받아 대출을 받은 것이다. 자매간 얼굴이 비슷한 것을 이용해 인감증명서를 발급받은 사건도 발생했다.    전공노의 주장대로 인감증명을 폐지할 경우 대안으로 삼을 수 있는 제도는 공증이다. 하지만 공증업무는 가격이 비싸다. 행정자치부는 인감증명의 폐지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면서도 국민의 부담을 우려해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행자부 관계자는 "외국에서는 공증 제도를 이용하고 있지만 수십만원에 달하는 공증 비용을 국민이 부담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이런 이유로 인감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공노 이달수 지부장은 "한 해 동안 인감증명서는 60여만 통이 발급된다"며 "이 정도 수라면 공증 비용을 낮출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최근 서울 강남구청은 인감증명제도의 위험성을 감안 본인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전자지문인식시스템'을 시범운행하기로 했다. 이 시스템을 도입하는 데에는 비용이 많이 든다. 재정구조가 취약한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도입이 불가능하다. 결국 재정구조가 취약한 곳에 사는 국민은 그만큼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이다. 정부가 인감증명제도를 굳이 유지하려고 한다면 책임 회피에 급급하지 말고 지방자치단체를 지원해 시스템을 설치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정재용 기자 politika95@kyunghyang.com  출처:뉴스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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